영화 올 이즈 트루는 셰익스피어의 침묵된 마지막 장을 조명하며, 문학의 거장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섬세하게 그립니다. 시대 속 가족과 정체성을 중심으로 문학적 상징을 넘어선 드라마를 펼치며, 케네스 브래너의 절제된 연출과 연기를 통해 셰익스피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올 이즈 트루
2018년 영화 올 이즈 트루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닌, 그의 삶 자체를 무대 위로 끌어올린 매우 독특한 전기 영화입니다. 특히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화려한 극작 인생이 아닌, 그가 극작을 그만둔 후 은퇴한 시기, 즉 말년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위대한 문호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셰익스피어를 조용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1603년 글로브 극장 화재로 연극을 접은 셰익스피어는 고향 스트랫퍼드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조용한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예술에 몰두했던 그가 가족과 다시 어울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의 침묵된 마지막 장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문호의 후회, 고통, 갈등,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 영화가 셰익스피어의 문학 세계를 찬양하거나 위대함을 조명하기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약점과 상처를 진솔하게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젊은 시절 가족을 외면하고 작품에 몰두했던 죄책감, 어린 아들 햄넷을 잃은 상실감, 가족과의 거리감은 문학 거장의 외면 뒤에 숨은 인간 셰익스피어의 내면을 보여줍니다. 그는 후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며,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가정에 가져다준 불균형을 애써 복구하려 애쓰는 모습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런 점에서 올 이즈 트루는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휴먼 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정체성
올 이즈 트루의 중심에는 문학이 아닌, 가족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주제가 놓여 있습니다. 이는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에 접근하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인 장치로 작용합니다. 예술가이자 아버지, 남편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17세기 영국의 가족 구조와 성 역할까지 고찰하게 만듭니다. 가장 큰 비극은 아들 햄넷의 죽음입니다. 영화는 셰익스피어가 창작을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햄넷의 죽음과 그로 인한 후회와 슬픔으로 해석합니다. 살아남은 딸들과 아내는 이미 아버지를 집 밖의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들과의 관계 회복은 단순한 가족 재결합이 아니라, 정체성의 회복으로 그려집니다. 특히 장녀와 둘째 딸 주디스는 당시 여성으로서의 위치와 삶의 제한을 반영하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셰익스피어는 극 중 수재 나에게 부와 명예를 물려주며 전통적 가치관을 따르려 하고, 주디스와는 갈등을 빚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점차 여성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셰익스피어 스스로도 자신의 가치관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러한 서사는 단지 가족 내 문제를 넘어서, 당시 영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억압과 기대, 그리고 자아실현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회적 코드로 작용합니다. 영화는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문학적 상징으로 존재했던 여성들을 현실의 주체로 복권시킵니다. 결국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 셰익스피어는 창작자라는 정체성에 갇혀 있었던 자신을 해방시키고, 인간으로서의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드라마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과 상실, 오해와 용서라는 보편적인 테마를 중심으로, 고전적 인물을 오늘날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소환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현대적 해석
영화 올 이즈 트루는 배우이자 감독인 케네스 브래너의 역량이 집약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 셰익스피어 연극을 무대와 스크린에서 해석해 온 인물로, 이번 작품에서는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아 셰익스피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경을 바탕으로 매우 절제된 해석을 선보입니다. 케네스 브래너의 셰익스피어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위대한 문학가 이미지가 아닌, 주름진 얼굴과 휘청이는 걸음걸이,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중년의 남자로 그려집니다. 화려한 대사나 웅변적 연기가 아닌, 속삭이듯 말하는 낮은 톤과 눈빛의 흔들림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그의 연기는 매우 인상 깊습니다. 연출 또한 절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장면이 고요한 시골 풍경, 단출한 실내, 어두운 조명 아래 진행되며, 카메라는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을 조용히 따라갑니다. 이로 인해 관객은 시각적 자극보다 감정의 흐름에 더욱 몰입하게 됩니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셰익스피어가 정원에서 혼잣말을 하며 햄넷이 남긴 글의 의미를 되뇌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셰익스피어라는 이름보다 아버지로서의 고뇌가 강하게 느껴지며, 동시에 문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집니다. 케네스 브래너는 이 작품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인간으로 다시 읽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영화가 단순히 셰익스피어에 대한 헌사가 아니라, 모든 창작자와 부모,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이야기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이런 의도는 영화 전체에 깔린 따뜻하면서도 아픈 감정선과 조용한 화면 구성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올 이즈 트루는 위대한 인물 셰익스피어를 사람으로 되돌려놓는 영화입니다. 문학이 아닌 삶, 극장이 아닌 집, 창작이 아닌 가족 속에서 고민하고 흔들리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여정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안겨줍니다. 특히 이 영화는 역사적 전기물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인물 중심의 감정적 드라마, 사회적 의미가 담긴 가족 이야기, 그리고 케네스 브래너라는 예술가의 진중한 해석이 더해져 다층적인 감동을 선사합니다. 위인에 대한 새로운 시선, 시대의 그림자 아래 있는 여성의 서사, 그리고 창작자와 인간 사이의 균형에 대한 탐구가 결합된 올 이즈 트루는, 단순히 고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고전을 현대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