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골드스미스는 소리의 경계를 넘는 기술적 실험정신과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스타일링으로 영화 음악의 지평을 확장했습니다. 또한 감정을 설계하는 내러티브 구조를 통해 음악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며, 영화와 완벽히 호흡하는 예술을 완성한 전설적인 음악감독입니다.
제리 골드스미스의 실험정신
제리 골드스미스는 20세기 영화 음악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작곡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오케스트라 음악뿐만 아니라 전자음, 실험적 사운드, 아방가르드 기법 등을 활용하여 소리의 경계를 넓힌 음악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1968년작 Planet of the Apes에서 그는 당대에는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12음 기법과 퍼커션 중심의 음악, 그리고 알루미늄 접시, 강철 파이프 같은 비정형적인 악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이 음악은 당시 청중들에게 낯설고 도전적으로 들릴 수 있었지만, 영화의 긴장감과 외계적인 분위기를 압도적으로 표현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골드스미스는 전자음악 기술이 영화 음악에 막 도입되던 시기, 초기 신시사이저를 도입한 대표적인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영화 로그 원, 데미안, 스타트렉 시리즈 등에서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를 오케스트라와 결합하여 미래적인 사운드를 창출했습니다. 이처럼 제리 골드스미스는 음향 기술의 변화를 음악 속에 담아내며, 새로운 영화적 소리를 창조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청중이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음악은 그들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장면과 감정에 맞는 새로운 소리를 찾아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결과 그의 음악은 당대 어떤 작곡가보다도 진보적이고 파격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장르의 개척자
제리 골드스미스의 또 다른 큰 강점은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영화 장르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새로운 음악 어법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공포, SF, 전쟁, 드라마, 액션, 판타지 등 거의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장르 영화 음악의 교과서로 불릴 만큼 폭넓은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남긴 대표작 중 하나인 1970년 패튼 대전차 군단은 전쟁 영화에 있어 음악의 역할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과 시대정신까지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군가풍의 금관악기와 반향 효과를 활용해, 패튼 장군의 영웅성과 동시에 고독한 내면까지 동시에 표현해 냈습니다. SF 장르에서는 1979년 에일리언이 대표적입니다. 공포와 미스터리가 결합된 이 작품에서 골드스미스는 불협화음, 긴 음의 지속, 음의 갑작스러운 끊김 등을 통해 시청자의 긴장감을 극대화했습니다. 특히 이 음악은 공간적 공포와 심리적 압박을 음향적으로 구현한 걸작으로 꼽히며, 이후 수많은 SF 영화 음악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폴터가이스트, 스타 트렉, 램보, 차이나타운, 더 뮤직 박스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으며, 작품마다 전혀 다른 스타일을 선보이며 단조로운 반복 없이 창작력을 입증해 왔습니다. 그는 장르의 성격에 따라 음악적 어휘와 음색, 구조를 달리 구성하면서도 언제나 제리 골드스미스다운 음악을 유지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단순히 다작한 작곡가가 아니라, 장르마다 새로운 언어를 제시하며 그 장르를 정의해 낸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링
제리 골드스미스의 음악은 단지 장면을 돋보이게 만드는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를 서술하고 감정을 조율하는 스토리텔링 장치로 작동합니다. 그는 테마의 반복, 모티프의 변형, 리듬과 음색의 구성 등을 통해 영화의 감정적 흐름을 치밀하게 설계했습니다. 예를 들어 차이나타운에서는 탁월한 트럼펫 솔로와 재즈풍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영화의 누 아르적 분위기와 인간의 고독감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이 음악은 단지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을 넘어서, 주인공의 감정 변화와 영화의 미스터리한 내러티브를 이끄는 핵심 장치가 됩니다. 그는 스토리의 구조를 분석한 뒤, 음악으로 플롯의 리듬을 설계하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테마 작곡이 아니라,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음악이 갖는 심리적 타이밍을 정밀하게 조율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긴장감이 서서히 올라갈 때는 점진적인 리듬의 상승과 낮은 현악기의 배경음을 활용하고, 갑작스러운 감정의 폭발에는 음향적 공백 후 급격한 타악기 혹은 금관의 사용으로 드라마틱한 전환을 만듭니다. 그는 특히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음악이 인물의 눈빛 변화, 숨소리, 결정의 순간에 맞춰 흐르며, 관객이 인물의 감정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음악 삽입을 넘어서, 서사의 한 축으로서 음악을 배치하는 내러티브 작곡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리 골드스미스는 스스로 내 음악은 스토리텔링이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으며, 그의 음악은 언제나 감정의 설계도처럼 이야기 속에 유기적으로 흘러들어 가는 방식으로 작곡되었습니다.
제리 골드스미스는 영화 음악의 경계를 확장한 전설적인 음악감독입니다. 그는 기술적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소리를 탐구했고, 장르마다 고유한 언어를 창조했으며, 내러티브의 구조 속에 음악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뛰어난 이야기꾼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장면을 채우는 배경이 아닌, 장면을 이끄는 주체였으며, 감정을 조작하는 것이 아닌 감정을 이해하고 함께 흐르도록 이끌었습니다. 지금도 그의 음악은 수많은 영화 음악 작곡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관객에게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리 골드스미스는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영화 음악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설계한 시대를 초월한 작곡가라 할 수 있습니다.